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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낼 만 하세요?” “그건 저에게 사치스러운 감정이에요.”
노인봉 산장지기 성량수씨(54). 지금은 서울 상계동의 ‘노인봉산막’ 주인장이 된 그에게 서울살이가 괜찮은지 물었다. 이에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지난 1986년 노인봉산장에 들어 자그마치 20년을 노인봉에서 살아온 사람, 산 깨나 다녔다는 이들에게는 이름 석자보다 기인 산장지기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괴짜 노인네(?) 성량수. 그가 서울에 막걸리집을 차렸다. 이름도 노인봉산막(02-933-5579)이다. 이곳이 그에게는 생존경쟁의 터다.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방랑벽을 이기지 못해 관광회사에도 15개월 다녔지만, 그마저도 시원치 않아 아예 산장지기 길로 들어섰다. 성량수씨는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35살이던 1986년 12월22일. 이유는 ‘산은 좋아하는데 갈 곳이 없어서’였다.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그는 결혼을 했고 두 딸을 둔 아버지가 되었지만 ‘노인봉산장의 괴짜 산장지기’라는 별칭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가 올 3월 산에서 내려왔다. 스스로 ‘쫓겨났다’고 표현했다.
“공단에서 임대차 재계약을 안 하겠대요. 무인대피소로 바꾸겠다네요. 내가 뼈를 묻을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 한 달 동안 갖은 생각을 다 하면서 분노하고 저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참 고마운 일이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더 나이가 들어 쫓겨났다면 그냥 그대로 힘없이 주저앉았겠지만, 그나마 아직 힘도 있고 용기도 있고 배짱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지난해 그는 백두대간 청소종주에 나섰다. 그가 주점을 청소하는 틈을 타 종주 보고서를 들쳐보았다. ‘하루에 두세 부대 쓰레기를 주우니, 산들이 나무들이 작은 산초들이 말없이 기뻐하겠지? 그런 생각으로 기꺼이 산행을 한다’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2005년 4월9일 희양산 은티 마을에서 쓴 글이다.
“노인봉에서는 왕인 줄 알고 살았겠지만, 여긴 서울이에요. 당신은 졸(卒)이에요.”
노인봉에서 내려온 성량수씨에게 그의 아내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하지만 성격 까칠하기로 유명한 그다. 손님은 왕이란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산에 못 가면 죽는다는 그는 가끔 ‘산막 주인은 산엘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노인봉산막, 운파’라는 방을 붙이고 산에 간다. 운파는 구름처럼 물결처럼 떠돌며 살고 싶은 그의 호다.
다시 산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성량수씨. 산악마라톤도 하고 있고, 올 가을에는 백두대간을 다시 되짚을 생각이다. 등반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삶의 무대는 오대산 노인봉산장에서 서울의 노인봉산막으로 바뀌었지만, 꺾이지 않는 자존심도, 그칠 줄 모르는 산에 대한 열정도, 마치 그의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자락처럼 한 치의 변함이 없었다.
노원구 상계동의 산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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