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이야기

알피니즘의 전설 크리스 보닝턴 강연 요지

hl1kfb 2008. 3. 13. 01:33
“세계 곳곳에 지금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봉우리들이 산악인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한국 산악인 여러분의 분발을 기대한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등반가로 아웃도어 브랜드 ‘버그하우스 코리아’ 명예회장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크리스 보닝턴(73) 경(卿)이 5일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년 정도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혀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50년 등반 경험에 녹여든 알피니즘 철학을 ‘가없는 지평(boundless horizons)’이란 제목 아래 풀어놓은 이날 강연에서 그는 1983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처음 만났던 산악인 엄홍길(상명대 석좌교수)씨와 이날 오전 함께한 북한산 등반으로 말문을 열었다.
  생애 중요한 기점이 됐던 등정 장면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애니메이션 등을 곁들여 1시간20분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진 동료를 본인도 갈빗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부축해 악천후를 뚫고 일주일에 걸쳐 구조해 내려온 파키스탄 오거봉 초등을 가장 험난했고 인상깊었던 등반으로 돌아보았다.
  그는 1960년 세계 최초로 안나푸르나 2봉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차례나 히말라야에 올랐고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최초로 등정하는 등 다른 산악인들이 위험하다고 지레 포기했던 루트를 앞장서 개척했던 인물.특히 1970년 안나푸르나 남벽과 5년 뒤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은 길이 남을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결과보다 오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를 제창,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에 영감을 던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퀘스트’‘세계의 대탐험’ 등 10여권의 책을 낸 작가로도 명성이 드높다.
  지난 2일 한국 땅을 처음 밟은 보닝턴 경은 빼어난 암벽을 갖춘 북한산,인왕산 등이 서울의 지척에 있는 데 크게 놀랐다며 내년 봄 인수봉 등을 꼭 등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그는 북한산 산행 도중 “인공암벽에서 등반을 배우는 행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산은 산으로 배워야 한다.”는 뜻깊은 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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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클럽 38시대에서 따옴

이상이 12월6일자 서울신문 지면에 나간 기사이고요.
  다음은 보닝턴 경의 강연 요지입니다.통역께서 열심히 하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옮겨적는 내용 중에 불충분한 부분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가감하고 읽어야 할 것 같네요.
  우선 시작하기 전에 꼭 언급하고 싶은 건 이날 강연이 철저하게 준비된 영상물에 터잡아 진행됐다는 것입니다.사진을 굉장히 잘 찍고 소중히 다루고 잘 활용하는 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특히 재미난 것은 갑자기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으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등장했다는 겁니다.장난끼라고 여길 수도 있고 위트라고도 할 수 있고 대범한 모험가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은 이유 때문이란 생각도 들더군요.아무튼 덕분에 영어로 말하고 우리 말로 옮기느라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을 피해간 듯 보이더군요.
  하지만 너무 등반 과정 설명으로만 전개되고 본인이 생각하는 등반 철학이 보다 구체적으로 정확히 제시되지 않은 점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1983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처음 만났던 엄홍길씨와 함께 북한산 영봉을 등반해 뜻깊었다.한국의 산이 환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도시 가까이에 그토록 훌륭한 암벽을 갖춘 뛰어난 산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내년 봄 다시 찾아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0년 등반을 1시간10분 안쪽에 여러분에게 전달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점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지금부터 강연할 내용은 나의 50년 등반 경험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가장 전환점이 됐던 등반 위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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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클럽 38시대 카페에서 따옴

우선 1975년 에베레스트 대규모 탐사때 함께 했던 더그 스코트의 제안으로 2년 뒤 시도했던 파키스탄 카라코람 바이타블락(영국 이름 오거) 등정이다.이 산은 그때까지 20개 등반대가 오르려다 실패한 전인미답의 경지였다.(보닝턴 경은 동영상 초입에 이곳 트레킹을 하다 들른 노천온천에서 벌거벗은 채 목욕을 즐기는 자신들의 사진을 청중들에게 보여줬다.남의 옷 벗은 장면을 생전 처음 본 파키스탄 포터들이 자신들의 목욕 장면을 동료에게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는 사진을 보여주는 장난끼까지 선보였음)
우리는 처음에 ‘멋도 모르고’ 이 등정을 ‘알파인 휴가’쯤으로 여겼다.
모두 6명이 함께 했는데 가볍고 캐주얼하게 세 가지 스타일로 각각 나눠서 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코트와 폴은 오른쪽 직벽을 타겠다고 했고 1캠프에서 2캠프까지 오른 뒤 고정로프를 타고 오르겠다는 둘과 그 뒤 알파인 스타일로 오르겠다는 나머지 둘로 또 나뉘었다.
그러나 어느 길 하나 쉽지 않았다.먼저 스코트와 폴이 그 루트를 포기하고 돌아왔고 나머지 넷도 추정했던 것보다 서릉에서 정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한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되돌아왔다.식량과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섯이 1캠프에서 만났을 때 스코트는 우리 쪽이 실패한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여섯 명은 모두 힘을 모아 서릉으로 다시 올랐고 험난한 트래바스 등을 건너 스코트와 난 정상에 올랐다.그러나 정상이 너무 좁아 내가 주위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스코트는 이미 하산길을 시작했고 내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아래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이 대목에서 사진 위에 점점을 찍고 이동경로를 표시하던 것이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어 누군가가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리면서 비명을 지르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 연출됐음.장내에 일제히 웃음)
아래를 내려다보니 스코트가 직벽에 날아가 그대로 부딪쳤다.내려가보니 그는 두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그를 로프에 의지해 무릎으로 밀면서 내려왔다.나마저 20m를 미끄러져 갈빗대가 몇 대 부러졌다.비명을 듣고 모 안토니에와 크리브 로랜이 달려와 이제 넷이 악전고투를 했다.성한 사람 셋이 다리 부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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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클럽 38시대 카페에서 따옴

한 명을 부축하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얼음 속에서 비박을 하며 3일을 버텼다.일생에 있어 가장 추운 밤들이었다.4일째 날이 개어 또 악전고투하며 내려왔다.올라갈 때부터 식량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에 비박 등을 하면서 뭐 하나 먹지 못했고 방한 자켓도 충분히 챙기지 못해 정말 최악이었다.그런 와중에도 스코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전진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으나 그들마저 식량이 부족했던지라 나머지 두 명과 포터들은 이를 철수하고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무릎으로 끌고 밀면서 또다시 악전고투해 산을 내려왔다.(당시 사진을 보면 훨씬 실감날텐데 아쉽다.하여간 웬만한 산악인도 기겁을 하고 달아날 만큼 난코스였다.)
아무튼 이 등반이 가장 어려웠고 그랬던 만큼 가장 인상에 남는 등반이었ㄷ.우리가 77년 등정한 이후 2004년까지 성공한 팀이 없을 정도니 얼마나 험난한지 상상이 갈 것이다.

두 번째로 1981년 중국이 개방한 8개의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콩구르를 택했다.이 봉우리는 신장과 러시아 파미르 고원을 발 아래 두고 있는 봉우리로 세계 미답봉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였다.패터 보드맨,조 태스커,딕 렌쇼 등과 함께 4명이 올랐는데 역시 얼음동굴에서 나흘이나 견뎌야 했다.
이듬해 에베레스트 남동벽 등정에서 보드맨과 태스커가 사망해 산에서 동료를 잃는 상상못할 아픔을 겪었다.하지만 난 그래도 등정을 계속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다.

세 번째는 1983년 인도 강고트리 히말라야의 쉬블링 서봉이었다.짐 포더링햄이라는 이웃의 치과의사와 함께 했다.오늘 눈으로만 본 북한산 인수봉과 비슷한 직벽이 있는 산으로 한 사람 밖에 설 수 없어 비좁은 정상에 서서 바라본 일대의 조망을 잊을 수가 없다.(실제로 이날 사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들이 이 봉우리에서 나왔음)
이 등정은 내가 했던 등반 가운데 가장 적은 두 명이 가장 신속하게 기술적으로도 완성된 등반을 했던 터라 기억에 남아있다.


(이 다음부터는 절정기를 지난 기술적으로도 더 쉽고 안전한 산행들을 얘기했습니다.)
1983년 남극 빈슨 매시프봉을 거쳐 1985년에야 에베레스트 북동루트(흔히 말하는 힐러리 루트)를 올랐는데 그때까지 고집했던 ‘남이 오른 산은 오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꺾었던 첫 봉우리였다.
책 ‘퀘스트’를 출간하면서 알게된 백만장자와 함께 요트로 그린랜드까지 가서 그곳 봉우리를 오른 얘기,9주 걸렸던 여정이 몇년 뒤 비행기로 이동해 하니 35시간 밖에 걸리지 않더라는 얘기,2005년 킬리만자로를 가족과 함께 95%가 가는 넓고 평탄한 루트 대신 눈으로 걸어 오른 짧은 여정,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 10주년으로 1995년 오른 드라나가리 등이 ‘재미삼아’ 돌아볼 만한 등정이다.

많은 산악인을 기다리는 미답봉들이 아직도 세계 곳곳에 있다.여기 계시는 여러분들도 그 봉우리들을 올라가고 싶어할 것이다.그 바람을 이루기 바란다.많은 봉우리들이 여러분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지금부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도 10년 정도는 더 미답봉들을 오르려 한다.도전적인 클라이밍을 계속할 것이다.(이 대목에서 마치 짜고 친 듯이 박수가 쏟아짐)


강연이 끝나고 사인회가 이어짐.아들 형제를 데려온 아버지가 사인을 받도록 독려했고 어떤 산악인은 점퍼에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오전 북한산 등반에 함께 했던 엄홍길 씨는 웬일인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난 기사를 쓰기 위해 회사로 돌아오느라 월간 ‘사람과 산’이 낸다는 저녁 식사 자리에는 가보지 못했다.아마 더 재미난 얘기가 많았을 것이다.
강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세종로에는 정치검찰을 규탄하는 이들의 외침이 들려왔다.문득,산에 오르고 싶어졌다./<to>/<fs8>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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