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밖에 모르는 산악인이라도 나이 서른이 되면 커다란 갈림길에 직면한다. 계속 산에 다닐 것인가, 아니면 먹고 살 길을 찾을 것인가. 7~80년대 젊은 시절을 산에서 보낸 산악인들은 이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젠 옛말이 되고 있다. 산을 통해 생계뿐 아니라 명예를 얻을 만큼 우리 사회가 변하고 있다. 산에 다니면서도 웬만한 직장인보다 수입이 많은 산악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 산악계에도 프로산악인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 산악계에 프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최근 들어 유명 산악인들의 산악활동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등반이 상업화·직업화되고 있는 프로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배고팠던 과거와는 다르게 ‘산을 갖고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등산인구 중에서 프로라고 부를 수 있는 산악인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해 이같은 현상이 산악계의 주류라고는 말 못하지만 분명 전 세대와는 다른 주목할 만한 변화인 것만은 사실이다. 프로산악활동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꺼내면 못마땅해 하는 산악인들이 많을 것이다. 인류 최초로 8000m급을 오른 안나푸르나 초등정 원정에 참여한 리오넬 테레이가 역설한 ‘등산은 무상의 행위’라는 산악 격언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프로라는 말 자체에 이미 알피니즘의 순수성이 실종된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산악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취재 결과 산악인들은 대체로 국내 프로산악활동의 태동기를 80년대로 잡고 있다. 이런 요인에 대해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교장은 “첫째 등산인구의 저변이 넓어졌고, 둘째 산악인들을 지원하는 사회 환경과 배경이 뒤따랐으며, 셋째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이라면서 “라인홀트 메스너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알피니즘이 농익은 유럽권의 윤택한 문명과 사회 환경이 조성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1977년 에베레스트 국내 초등정으로 한껏 고무된 당시 국내 산악계는 의욕적인 히말라야 원정을 통해 마칼루·K2·낭가파르밧·다울라기리·동계 에베레스트 등정 등 해마다 굵직한 기록들을 세워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으며, 경제 또한 80년대 중반부터 저금리·저유가·저달러화의 3저 호황에 힘입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프로산악인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 토대와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됐기 때문이다. 프로산악인 효시로 허영호씨 꼽아 이 무렵 두각을 나타낸 산악인이 바로 허영호씨. 이보다 앞서 최초로 프로 가이드를 선언한 그룹이 있었다. 80년대 초반 윤대표·이용호·허정식·장봉완·백동욱 씨 등이 만든 ‘프로가이드협회’는 암벽등반이나 5~6000m급 해외원정 가이드를 2~3년 정도 활동했지만 아쉽게도 정착시키지는 못했다. 기자가 취재한 산악인들은 허씨를 등반을 상업화·직업화시킨 국내 프로산악인의 효시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당시 마칼루(82년), 마나슬루(83년), 동계 에베레스트(87년) 등에 무산소와 부분 단독등반으로 정상에 잇달아 오르며 고상돈씨의 사망 이후 스타 기근에 시달리던 국내 산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산악인들이 허씨를 ‘국내 최초의 프로산악인’으로 평가한 가장 큰 이유는 90년대 들어서도 남극점(94년), 북극점(95년) 도보탐험에 성공해 세계 최초의 3극점과 7대륙 최고봉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박정헌씨는 “한국산악회 제명 사건 등으로 허영호씨에 대해 말이 많지만 그는 산악인들이 프로로 활동할 수 있게끔 기반을 닦아놓은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허씨는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이런 평가에 대해 “80년대 초반 무렵 코오롱스포츠에 입사해 용품개발을 한 산악인들이 있었는데 그런 분들이 나보다 한발 앞선 프로이지 않겠냐”고 다소 부담스러운 듯 말했다. 허씨의 말처럼 70년대 초 코오롱스포츠 출범과 함께 입사한 김태호·이성환씨, 그리고 80년대 초 코오롱스포츠에 입사한 임덕용·유한규씨 등이나 90년대 초 등산의류 모델로 활동했던 김창선·정승권씨 등처럼 시기적으로 앞선 산악인들이 여럿 있었지만 프로의 속성상 전문성과 더불어 대중성을 갖춘 당시의 인물로는 허영호씨가 적합하다고 판단해 그를 최초의 프로산악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걸어 다니는 브랜드’인 유명 산악인들을 가만 놔둘 리 없다. 기업은 유명 산악인을 모델이나 직원으로 기용해 기업홍보와 상품판매라는 ‘쌍끌이’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산악인은 기업의 후원으로 안정적인 산악활동을 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둘의 만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현재 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활발한 원정이나 탐험을 펼치고 있는 엄홍길·박영석·한왕용·박정헌씨 등이 허영호씨의 뒤를 잇는 프로산악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프로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지만 여기에서는 고정적인 급여를 받는 경우뿐만 아니라 의류나 장비 등과 같은 등산용품을 지원받아 산악활동에 경제적인 도움이 되는 경우까지 포함해 다루고자 한다. 현재 국내에서 프로나 세미프로라고 말할 수 있는 산악활동을 살펴보면 크게 브랜드 클라이밍팀·실업팀·개인등산학교·알파인 저널리스트 등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업체마다 운영하는 브랜드 클라이밍팀 첫째, 브랜드 클라이밍팀은 등산장비 제조업체들이 유명 산악인과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들에게 자사의 신상품이나 수입품들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형태를 말한다. 최근 웬만한 업체들마다 유명세를 타는 산악인이나 선수들로 구성된 자체 클라이밍팀을 운영하며 제품홍보와 필드 테스트 효과를 동시에 얻고 있다. 또 몇몇 스타급 산악인들의 경우에는 특정 업체 직원으로 근무하거나 비상근 임원 등으로 있으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업체의 브랜드를 홍보하는 형태도 있다. 지원 내용을 보면 아직 의류나 장비 등이 대부분이지만 지명도에 따라 고정급·훈련비·원정비 등과 같은 현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현재 노스페이스(영원무역 회장 성기학)·FnC코오롱(대표 제환석)·트렉스타(대표 이상도)·넬슨스포츠코리아(대표 정호진)·포리스트시스템(대표 이석호)·트랑고(대표 유학재)·한고상사(대표 한철호)·쎄로또레글로벌(대표 심수봉)·솔트렉(대표 성송은)·지노아웃도어(대표 백종기)·파고다아카데미(회장 고인경) 등과 같은 업체들이 자체 클라이밍팀을 운영하거나 아니면 유명 산악인을 모델이나 직원으로 채용해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영원무역 계열사인 골드윈코리아가 관리하는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페이스(www.thenorthfacekorea.co.kr)는 고산등반 산악인과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양쪽을 지원하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클라이밍·스키·스노보드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와 탐험가들로 이루어진 ‘The North Face Athlete Team’을 운영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박영석·정승권·박정헌씨 등과 같은 간판급 주자들이 1996년부터 한국 클라이밍팀으로 소속돼 있다. 이중 박영석씨는 1999년부터 골드윈코리아 비상근 이사로 채용되면서 당시 산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8000m급 14좌 완등 레이스에 든든한 발판을 마련했다. 노스페이스는 또한 스포츠 클라이밍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3~4년 전부터 이재용·김동현씨를 비롯해 김자하·자비·자인 3남매 등 유망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형우(동국대OB·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오은선(수원대OB·영원무역 영업부), 이재용(노스페이스 영업부)씨 등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형우 과장은 지원 내용에 대해 “매년 철마다 1인당 노스페이스 의류를 약 15벌 정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소비자가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백만원 가량 된다”면서 “이중 박영석이사는 해외원정비용까지 지원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브랜드 ‘코오롱스포츠’와 코오롱등산학교를 운영 관리하는 FnC코오롱(www.fnckolon.co.kr)은 매년 수억에 달하는 등산학교 운영비를 지원하며 올바른 산악문화 보급에 힘쓰고 있다. 영업마케팅팀 백승철 차장은 “현재 특정 유명 산악인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고산등반 등 각 분야별로 전문산악인으로 구성된 가칭 ‘첼린저팀’을 꾸릴 계획”이라면서 “현재 이 팀에 맞는 리더를 물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코오롱등산학교 원종민 교무는 최근 FnC코오롱 산하 조직인 코오롱스포츠BU 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등산학교와 더불어 첼린저팀의 운영까지 맡게 된다. 트렉스타(www.treksta.co.kr)는 1996년 허영호씨를 시작으로 2001년부터 엄홍길씨와 인연을 맺고 있다. 트렉스타는 두 유명 산악인뿐만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해외원정대들에게도 장비들을 지원하고 있다. 엄씨는 올 3월 비상근 이사로 정식 취임하면서 임원급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마케팅팀 안창욱 팀장은 “스타급 산악인들을 후원하면서 브랜드 주목도가 높아졌고, 제품판매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전속 클라이밍팀을 만들 계획도 있다”고 설명했다. 넬슨스포츠코리아(www.nelson.co.kr)는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들 중심으로 구성된 ‘매드락 클라이밍팀(회장 조규복)’을 2000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특징은 ‘매드락 클라이밍팀’을 서울시연맹 가입단체로 등록해 소속 선수들의 각종 등반경기대회 출전을 용이하게 해주고 있는 것. 현재 고미영, 김동현, 이재용, 손상원, 손정준, 조규복, 김자하·자비·자인 3남매 등 스포츠 클라이밍계의 정상급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김인경 마케팅팀 주임은 “장비 지원과 더불어 ‘매드락’ 브랜드 매출액 중 상당 금액을 매년 선수들의 트레이닝 비용으로 지원하고 있다”면서 “손익을 따지기 보다는 클라이밍계에서 번 돈을 다시 클라이밍계로 환원하는 목적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정호진 사장을 포함해 대부분의 직원들이 전문등반을 하고 있다. 포리스트시스템(www.mountainhardwear.co.kr)은 2000년부터 ‘포리스트 테스트팀’을 두고 고미영·김홍빈·모상현·변성호·이상조·김점숙·채미선·최종열·강정식 씨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중 탐험가 최종열씨와 케이블방송 ‘리빙TV’에서 낚시전문 리포터로 활약하는 강정식씨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시즌별로 적게는 7~8벌, 많게는 20벌까지 ‘마운틴하드웨어’의 각종 의류들을 지원받고 있다. 이중 고미영·채미선 씨에게는 월급 형태로 매달 현금을 지원하고 있다. 마케팅팀 윤석미 과장은 “전문산악인들을 대상으로 ‘마운틴하드웨어’ 제품의 홍보 효과를 많이 봤다”면서 “앞으로 가수이자 산악인인 신현대씨를 비롯해 5명의 산악인들을 팀원으로 더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엄홍길·박영석·한왕용씨 트랑고(www.trango.co.kr)는 2002년 말에 강형완·윤대희·황평주·최원일·오세웅 씨 등으로 구성된 필드팀에게 자사 및 수입 장비 전 품목을 지원하고 있다. 영업부 정민영 부장은 “필드팀에게 리포터를 받아 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유명인 보다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등반을 지향하는 산악인들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고상사(www.edelweiss.co.kr)는 2002년 6월 한왕용씨를 홍보부장으로 채용해 8000m급 14좌 완등에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다. 또 김용기등산학교에도 장비와 의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일반산행과 고산거벽 산악인들을 지원하는 ‘첼린저팀’과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를 지원하는 ‘아나사지팀’을 만들어 운영해오다가 에델바이스배 빙벽대회나 클린 마운틴 등처럼 회사가 직접 주도하는 행사로 바꾸기로 방침을 세워 올해 들어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한철호 사장은 “앞으로도 능력 있는 산악인이 있으면 직원으로 적극 채용하겠다”고 말했다. 쎄로또레글로벌(www.cerrotorre.co.kr)은 2002년 문을 연 ‘쎄로또레등산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홍보마케팅팀 좌우진 팀장은 “회사에서 매달 강사비와 운영비로 4~5백만원을 쎄로또레등산아카데미에 지원하고 있다”면서 “유명 산악인보다는 자라나는 세대들이나 어렵고 힘든 원정대들을 지원하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설악산 적십자구조대·지리산 적십자구조대·지리산 산악구조대 등 뒤에서 묵묵히 고생하는 구조대들에게 매 시즌마다 20명분의 배낭과 의류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이규태 원장과 허욱 교장의 쌍두마차 체제로 운영되는 쎄로또레등산아카데미는 좌우진·서기석·김창호·임성묵씨 등의 강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솔트렉(www.soletrek.co.kr)은 유명 산악인보다는 일반 등산객과 아웃도어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2003년도부터 ‘첼린저팀’을 꾸려 올해 제2기를 출범시켰다. 첼린저팀은 지금까지 선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활동 범위와 규모가 커 첫 출범 때부터 많은 이목을 모았다. 현재 고산등반·클라이밍·일반산행·산악자전거·인라인 스케이트 등 5개 분야에서 평균 10: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70여 명이 다양한 등반과 아웃도어 활동을 하고 있다. 팀원 전원에게는 배낭과 팀복이 일괄 지급되고, 팀이나 개인별로 활동성을 감안해 차등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올 2월말에 다녀온 백두산 원정 등과 같은 행사에 필요한 비용을 전액 또는 부분 지원하고 있다. 피우일 첼린저팀 지원팀장은 “이들을 통해 품질 평가와 아이디어를 얻고, 또 고객에 대한 기업 이윤의 환원 차원에서 첼린저팀을 결성했다”면서 “이들의 활동 덕분에 브랜드 인지도가 전보다 향상되는 효과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매장에서 인기가 높은 ‘첼린저 2031’배낭은 실제 첼린저팀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수렴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지노아웃도어(www.izino.com)는 2003년 3월 구성한 ‘지노클라이밍팀’을 통해 구은수·박무택·홍순덕·이석희·김영식·민준영씨 등에게 신상품 의류들을 지원하고 있다. 백종기 대표는 “앞으로도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단체에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초의 실업팀 한국도로공사 산악팀 출범 등산장비 제조업체는 아니지만 기업정신과 잘 맞아 산악인을 지원해주고 있는 업체도 있다. 외국어 교육학원인 파고다아카데미(www.npagoda.com)의 캐치프레이즈인 ‘I can do it’이 산악인의 도전정신과 일치한 것. 이 회사는 1995년 11월 엄홍길씨를 비상근 홍보부장으로 채용해 엄씨가 아시아와 국내 최초로 8000m급 14좌 완등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다. 고인경 회장은 14좌 완등을 끝낸 엄씨의 업적과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홍보이사로 승진시켜 임원급 대우를 해주고 있다. 둘째, 실업팀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도로공사 산악팀을 말한다. 2001년 7월은 우리나라의 산악역사에 의미 있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산악실업팀을 창단한 해이기 때문이다. 산악인의 드높은 기상과 도전정신, 그리고 개척정신이 새 길을 뚫는 한국도로공사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노조와 회사측의 협의로 산악팀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당시 윤서현 한국도로공사 총무본부장과 박상수씨가 산파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관심과 이목을 끌었던 산악팀은 2002년 5월 시샤팡마 남서벽에 ‘코리아 하이웨이’루트를 뚫어 한국산악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던 8000m급 고봉에 신루트를 개척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산악팀은 3월에 ‘21세기 한국산악계의 과제’로 꼽히는 로체남벽과 로체샤르 남벽 원정을 떠나 다시 한번 저력을 보여줄 각오다. 이번 원정대에는 외부 산악인이 많아 도로공사 내부에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로체남벽은 험난한 고산거벽등반이기에 외부 산악인들과의 협조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산악인들은 도로공사 같은 공기업 등에서 일찍이 산악인들을 지원해주었다면 안정적인 환경과 조건 속에서 더 좋은 등반 결과가 나오지 않았겠냐며 산악팀 출범을 반가워했다. 해외원정을 자주 다닌 어느 산악인들의 말에 따르면 “스페인·오스트리아·브라질 등 외국원정대들은 국영기업인 통신회사의 후원을 받고 오는 경우들이 많아 부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공기업의 넉넉한 지원을 받는 만큼 팀원들의 부담도 크다. 박정헌 팀장은 “국내 실정에서 실업팀으로서의 산악팀이 발전해나가려면 소속 기업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선 좋은 등반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면서 산에 간다는 게 상당히 힘들다”면서 “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이나 등반활동에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나름대로 느끼는 고충과 홍보효과에 대해 털어놨다. 현재 여자배구팀과 함께 복지후생부 소속인 산악팀은 박정헌 팀장을 비롯해 박상수·김주평·강연룡·김미곤·박형묵씨 등 내로라하는 멤버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경남지역본부와 호남지역본부에서 근무하며 회사 규정에 따른 대우를 받고 있다. 아직 사정이 어려운 개인등산학교 셋째, 개인등산학교는 유명 산악인들이 사설학교를 열어 후진을 양성하는 경우를 말한다. 현재 운영되는 주요 등산학교들의 명칭은 교장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우가 많다. 이는 등산학교를 운영할 만큼 등반능력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취재 결과 각 학교 교장들은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대략 교육생 인원과 교육 횟수를 따져보면 수강료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실정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개인등산학교를 운영하는 산악인들은 어쩔 수 없이 ‘사이드 잡’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이드 잡’이란 것도 강연·집필·장비점 운영 등 산과 관련된 활동들이 대부분이다. 1990년 5월에 개교한 정승권등산학교(www.climbing.pe.kr)는 국내 첫 개인등산학교로 손꼽힌다. “산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서 등산학교를 열었다”는 정승권 교장은 “일반 기업의 평균 연봉 수준인 3~4천만원과 비교하면 아직 차이가 많이 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실내암장운영·강의·원고료·산악영화 코디네이터 등 산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을 병행해도 수입이 평균치에 모자란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2001년 4월에 문을 연 김용기등산학교(www.kimcs.com)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용기 교장은 “처음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운영할 계획이었는데 실기에 관련된 문의 사항들이 자주 올라와 실전을 통하지 않고는 등산교육이 어렵다고 판단해 정식으로 등산학교를 오픈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김 교장은 이어 교장이라는 사람이 직장인 월급 수준 정도의 수입이 생기려면 1인당 수강료를 40~45만원 정도 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밝혔다. 김 교장은 등산학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지난 해 9월 종로 5가에 장비점 ‘알프스빌’을 차리기도 했다.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www.extremerider.co.kr)는 고 최승철·김형진씨가 인공등반교육을 목적으로 1997년에 설립했다. 이 학교는 창립 주역들이 1998년 탈레이사가르에서 유명을 달리하자 강사들이 고인들의 유지를 이어 받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일년에 2기수를 배출하는 이 학교는 수익금을 교장과 강사들이 가져가는 대신 장비구입, 등반대회 개최, 원정 등에 사용하고 있다. 전북연맹 부회장이자 전북대 미대교수인 이상조씨가 지난 해 교장으로 취임해 학교발전에 힘쓰고 있다. 개인과 단체가 혼합된 등산학교도 있다. 광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선앤문 산악문화(www.alpine24.co.kr)는 문종국씨를 중심으로 지역 산악인들이 뭉쳐 운영하고 있다. 문 대장은 “지방이다 보니 서울에 비해 수강생들이 적어 많은 애로점이 있다”면서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야영수련 지도강사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학교 운영비를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아이거 박’으로 불리는 박영배씨가 운영하는 북한산등산학교(www.bukhansancs.co.kr)도 있다. 등산학교 운영을 통해 어느 정도 생계유지가 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2000년 7월 개교한 권기열등산학교(www.rocknice.co.kr)의 권기열 교장은 “매주 교육이 이루어지고 또 평일이라도 단 한 명의 신청자가 있으면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일년에 암벽반 10기수, 빙벽반 2기수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취재한 각 등산학교 교장들은 “사정은 비록 어렵지만 후진양성과 좋아하는 등반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인등산학교는 오랜 산악활동을 통해 능력과 실력이 검증된 산악인에게 직접 등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업이나 산악단체가 운영하는 등산학교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다. 이에 김용기씨는 “사람들이 교장 개개인의 능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정작 개인한테 교육 받는 걸 꺼려해 규모가 크거나 역사가 오래된 학교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점숙씨는 “강사들이 교육을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같이 배우고, 같이 생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형주·윤길수·손정준·조규복·김점숙·유석재·김동현씨 등과 같은 산악인 및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들이 직접 인공암장을 열어 후배들을 지도하는 형태도 있다. 회원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인공암장도 개인등산학교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중에는 국제루트세터나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 역할이 몇 안 되는 등반경기대회에서 심판, 루트 세팅, 대회운영위원 등에 국한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장식물로 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선수 생명이 짧은 스포츠 클라이밍계의 특성을 감안해 뜻있는 기업들이 이들을 코치와 선수로 끌어들여 ‘스포츠 클라이밍 실업팀’을 창단하는 것도 선수들의 진로와 능력을 보장해주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넷째, 알파인 저널리스트는 최소 20년 이상 산악 관련 집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손경석·김영도·이용대씨 등의 원로산악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단행본 출간과 등산잡지 등에 산악관련 원고를 기고하거나, 기업이나 단체 등의 초청을 받아 강연 활동도 하고 있다. 이런 원로산악인들은 국내 산악문화의 부흥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또 후배 산악인들에게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어 이들이 받는 원고료와 강의료 보다는 그 역할과 중요성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걸음마 단계지만 가능성을 보여줘 취재를 하는 동안 프로산악활동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대체로 프로화의 추세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산악계의 프로화는 자질이 뛰어난 산악인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또 뭔가 한 가지만 잘 해도 생계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승권씨는 “프로화가 산악계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서로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작용해 크고 작은 알력이 생길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엄홍길씨는 “파고다아카데미의 후원으로 생활이 안정되어 등반에만 전념해 14좌 완등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면서 “기업 후원이 확대되어 산악인의 도전정신이 대중적인 공감대로 형성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왕용씨는 “처음 하는 직장생활이 산에 다니는 것보다 힘들다”면서 “산에서 내려와 사회생활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변성호씨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일상화된 외국에 비해 국내에는 몇몇 유명 산악인에 한해 국한됐지만 기업의 지원은 찬성한다. 이런 지원은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고 말했다. 박세리·박찬호 등 유명 운동선수들에 대한 마케팅 효과에 관한 학위논문이나 기술 등과 관련된 조사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반면, 8000m급 14좌 완등자를 3명이나 배출한 국내 산악계는 아직 이렇다 할 연구 성과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뛰어난 산악인들의 등반활동에 대해 학술적인 안목과 시각으로 접근해 본격적인 연구 작업을 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악인의 위상은 산악인 스스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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