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이야기

봉완이형 소식

hl1kfb 2007. 10. 9. 18:03

한국등산학교 특별반 남북산악구급봉사대 공동연수

10월 11~15일 금강산…기초암벽등반기술·응급처치법 등 교류 “북남 산악교류를 더 넓혀 나가겠습네다”



 ◇ “…이인정 한국등산학교 교장(오른쪽)이 북측 구급봉사대 양준성 과장에게 등산장비를 전달한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양 과장 왼쪽에 이종관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 부소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금강산 길에 다시 올랐다.
지난 9월초 구룡대 암벽코스를 개척하고 돌아온 지 한달 여 만에 한국등산학교(교장 이인정)와 서울산악조난구조대(대장 김남일)는 서둘러 짐을 꾸렸다.
이번 방문 명칭은 한국등산학교 특별반 남북산악구급봉사대 공동연수. 플래카드와 문서 등에 들어가는 공식 표기는 양측이 합의한 한글 대신 ‘KOREA ALPINE SCHOOL’로 정했다.
이번 공동연수는 지난 구룡대 개척 방문 때 남북간 산악기술교류의 필요성을 남측이 제안하고 북측의 금강산 구급봉사대(과장 양준성)가 전격 받아들여 현대아산을 통해 성사된 것이다.
남측 대원은 이인정 교장과 장봉완 학감을 비롯한 최철호 사무국장·전서화·유성원·김남일·서우석·정상택·김경모씨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됐다.
11일 오전 9시 50분,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한 강사들은 가져온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시동을 걸었다.
사업자 자재수송 차량 행렬 후미에 붙어 비무장지대에 들어섰다.
무심한 가을 햇살은 비무장지대를 어느새 물감 풀어놓은 팔레트로 바꿔놓았다.
차창 너머 들판엔 벌써 추수가 끝났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속담처럼 마지막 가을걷이에 어린아이들까지 나선 모습은 남쪽의 여느 농촌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온정각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마친 다음 오후 4시에 남북 상견례를 가졌다.
대부분 구면이라 정겹게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상견례는 이번 공동연수 설명회 겸 장비전달을 하는 자리로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 이종관 부소장과 북측 구급봉사대 전원이 참석했다.
“남과 북, 북과 남 구조대원들이 산악기술 교류를 위해 이렇게 한자리에 만나니 더없이 기쁘고 반갑습니다.
산에서 맺은 우정은 평생 가니까 이번 연수를 통해 앞으로 남북 산악인들이 서로 줄을 묶고 함께 등반도 하고 암벽 코스도 같이 개척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남북 산악인들이 모여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날도 올 것이라고 봅니다.”
이인정 교장의 인사말에 이어 북측의 양준성 구급봉사대 과장의 답사가 이어졌다.
“다들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 와주셔서 감사를 드립네다.
그리고 많은 등산장비들도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네다."
이날 북측에게 전달된 등산장비들은 전문장비를 비롯한 의류, 등산화, 모자, 스틱, 장갑, 헤드램프, 양말 등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챙겼다.
동진레저·트랑고·코베아·예솔스포츠·에델바이스아웃도어 등의 업체에서 약 2천만원에 상당하는 장비들을 기증했다.
상견례가 끝난 후 최철호 사무국장은 북측 대원들에게 장비 소개와 사용법, 고어텍스, 쿨맥스 등 기능성소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 비봉폭 전망대에서 티롤리안 브리지 기술을 이용해 들것을 계곡 건너편으로 이송하고 있다.
최철호 사무국장이 계곡으로 내려와 지켜보고 있다.


매듭법·확보법·기초암벽·산악구급법 교류

방문 이틀째. 오늘 프로그램은 매듭법, 확보법, 기초암벽등반 실기, 산악구급법 등. 구룡폭 주차장에서 북측 대원들을 만났다.
오늘 서울로 떠나는 이인정 교장은 북측 대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
이 교장은 다시 한번 남북 산악인들의 교류와 우애를 강조했다.
관광객들 보다 먼저 구룡폭으로 향했다.
하늘엔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른 도화지가 펼쳐져 있다.
단풍과 흰 바위, 그리고 옥빛 계곡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방불케 하는 금강산은 이래서 가을 풍악산으로 불리는가 보다.
땀이 한소끔 끓어오를 즈음 쉼터가 나왔다.
옆에 앉은 최국성 부과장(부대장)이 지난번 구룡대 개척 때 막간을 이용해 간단히 실습한 응급처치법을 실제 사용해봤다고 귀띔했다.
“지난 9월 남측 구조대원들이 떠나던 날 금강문에서 40대 여성관광객이 다리를 접질려 발목 골절 부상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네다.
이때 끈(슬링)을 이용해 환자를 업고 내려가는데 아주 요긴하게 써먹었습네다."
주차장에서 출발한 지 약 1시간 만에 관폭정에 도착했다.
정자 아래 전망대에 배낭을 가지런히 정렬하고 바로 강의가 시작됐다.
김경모씨가 첫 번째 강사로 나와 매듭법에 대해 설명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8자 매듭, 클로브 히치 매듭, 반 클로브 히치 매듭, 보울라인 매듭, 피셔맨 매듭, 테이프 매듭, 옭매듭 등이 소개됐다.
북측 대원들은 가져온 로프들을 이용해 하나씩 손에 익혀나갔다.
매듭이 한번에 잘 될 때에는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생각대로 잘 안 풀릴 때에는 아쉬워하는 표정이 교차한다.
양준성 과장은 카메라가 거슬리는지 강의 도중 웃음 띤 얼굴로 살살 좀 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
이어진 확보법 강의는 유성원씨가 맡았다.
자기 확보 및 후등자 확보 요령, 하강 등을 관폭정 축대 틈에 슬링과 프렌드를 설치해 자세히 소개했다.
북측 대원들은 틈에 박힌 작은 프렌드를 못 믿어 하는 눈치다.
프렌드에 매달려 보라는 유성원씨의 권유에 몇몇 대원들이 체중을 실어 매달렸다.
보기와는 다르게 프렌드가 빠지지 않고 튼튼하게 버텨주자 북측 대원들이 신기한 듯 한명씩 매달리며 장난까지 치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강의 두 번에 오전이 다 지나갔다.
남북 대원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기애애한 그 모습은 마치 인수봉이나 선인봉의 야영장에서 흔히 보는 여느 산악회처럼 정겨웠다.
김경모씨와 유성원씨에게 강의 소감을 물었다.
“눈썰미가 좋아 한두 번 알려주면 금방 따라하네요.”
“시간이 짧아 아쉽지만 대원들의 관심과 열의가 높아 집중력이 좋았습니다."
오후엔 오전에 강의했던 내용들을 실습하는 시간. 김남일·전서화·서우석씨는 양준성 과장과 함께 무봉 건너편 바위 정찰을 갔다.
관폭정에 남은 대원들은 장봉완 학감의 지휘로 슬랩 등반과 하강을 연습했다.
관폭정에서 구룡연으로 이어지는 슬랩에 로프를 설치하고 대원들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계곡을 건너 구룡대 하단부까지 연습을 이어갔다.
경사가 완만한 건지, 운동신경이 좋은 건지, 다들 능숙한 몸놀림이었다.
장봉완 학감은 중간 중간 11자 발디딤, 스틱 사용법, 삼지점 등에 대해 온몸으로 선보이며 열띤 설명을 했다.
등반 경력 36년의 세월에서 우러나오는 관록과 경험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장 학감은 “확보지점에 자기확보줄을 걸고 한번에 매달린다거나, 하강할 때 오른손을 슬슬 풀며 내려갈 정도로 적응력이 빠르다”며 놀라워했다.
오후 2시 30분에 일정을 끝내고 비봉폭 전망대로 하산해 정찰팀을 만났다.
김남일씨는 내일 연습할 적당한 코스를 찾았다고 한다.
하산 도중 양 과장이 옆에 붙어 이것저것 물었다.
“남측에는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네까? 여성들도 산에 많이 갑네까?” 온정각에 도착하자 곧바로 응급처치법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강사는 정상택씨. 대한적십자사 응급처치법 공인강사이기도 한 그는 고령자가 많고 골절 부상이 대다수인 금강산 관광 실정에 맞게 12시간짜리 내용을 1시간으로 함축해서 설명했다.

 ◇ 공식 일정을 마친 남북 대원들이 무봉폭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티롤리안 브리지 이용한 들것 이송법 눈길 끌어

방문 사흘째는 산악구조법, 기초암벽등반 실기. 어제 오르던 구룡폭 코스를 다시 올라 비봉폭 전망대에 도착했다.
비봉폭은 꼭대기에만 가는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루가 다르게 단풍색이 변하는 것 같다.
등산로에 곳곳에 쌓인 낙엽을 북측 대원들이 한쪽으로 치우면서 올라갔다.
낙엽을 잘못 밟으면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구조대의 제1원칙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장봉완 학감을 비롯한 몇몇 대원들이 전망대 기둥에 로프를 설치하고 계곡 건너편 지형을 살피더니 굵은 소나무를 가리켰다.
이때 양준성 과장이 대원들에게 “매듭방법을 눈 여겨 보라”고 단단히 일렀다.
유성원씨와 서우석씨가 하강을 해 계곡으로 건너가 소나무에 로프를 묶고 팽팽히 당겼다.
티롤리안 브리지 기술을 이용한 들것 운반법이다.
환자 역할은 북측 김은철 대원이 하기로 했다.
남북 대원들이 들것에 환자를 싣고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는 법부터 차근차근 실습하며 전망대로 왔다.
장봉완 학감과 김남일씨가 고정된 로프에 도르래를 걸고 들것에 안전 로프를 묶은 다음 천천히 계곡 건너편으로 보냈다.
오가던 관광객들이 난데없는 광경에 전망대 주변으로 몰려들어 “지금 뭐하는 거냐?”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들것 이송을 몇 차례 하고 나서 이번엔 들것 없이 건너가는 연습을 했다.
북측 대원들이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순서가 와도 몸을 사리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과감히 로프에 몸을 실었다.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티롤리안 브리지다.
소감을 물었더니 다들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어제 근무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북측 대원 5명이 새로 왔다.
장봉완 학감은 이들에게 친절한 설명과 함께 하강법을 연습시켰다.
어제 보다 고도감이 더 센 곳이지만 대원들은 잘 적응했다.
바위와 금방 친해지는 그들은 몸이 날렵하고 겁이 없어 암벽등반 체질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점심때가 되자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계곡가의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한데 모아 큰 반찬통에다 일명 ‘통일비빔밥’을 만들었다.
밥이라도 경계를 허물고 서로 하나가 되니 맛이 유달랐다.
오후엔 어제 눈여겨둔 무봉 건너편 바위에 가서 기초암벽등반을 연습했다.
등산로에서 잡목 숲을 헤치고 조그만 올라가면 된다.
정찰팀이 어제 만든 1피치짜리 코스 3개에 김남일, 전서화, 유성원씨가 먼저 올라 북측 대원들의 확보를 봐주었다.
굵은 땀을 흘리며 지점에 도착한 한 대원이 소감을 꺼냈다.
“만만치 않습네다.
밑에서 볼 때엔 쉬운 줄 알았는데 막상 바위를 오르니까 기술 없이는 안 된다는 걸 알았습네다."
전 대원이 코스를 한바퀴 돌고나서 철수를 시작했다.
온정각에 도착해 김남일씨가 안전대책에 관한 내용을 설명했다.

수정봉 관광 취소하고 구룡대 등반


방문 나흘째. 계획은 수정봉 관광인데 양준성 과장이 구룡대 ‘아산길’을 등반하자고 제의했다.
며칠 사이에 암벽등반에 쏠쏠한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남측 대원들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오전 9시 30분께 관폭정에 도착해 팀을 2개조 나누었다.
남측은 김남일, 유성원, 최철호씨 등 3명, 북측은 양준성 과장을 비롯한 5명이 정상으로 가서 먼저 하강을 하며 로프를 깔기로 하고, 나머지는 장봉완 학감의 지휘로 하단에서부터 등반하기로 했다.
서우석씨가 선등을 나섰다.
밑에서 대기하는 북측 대원들의 표정에 긴장과 설렘이 오간다.
서우석씨가 1피치에 도착할 즈음, 정상조가 하강을 시작하는 게 보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티끌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이 망막을 찔렀다.
서우석씨가 1피치에 도착하자 장 학감이 “등반 순서는 남북 대원들이 교대로 하라”고 지시했다.
북측 대원들은 예상대로 등반을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아쉽지만 등반은 3피치까지만 하기로 했다.
3피치 넓은 테라스에 올라가니 많은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북측 대원들은 난생 처음 올라온 이곳에서 주변 풍경을 머릿속에 담느라 눈길이 바쁘다.
3피치 종료지점 확보물에 매달려 후등자를 확보하는 북측 마정철 팀장의 표정이 환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릴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마 팀장의 확보로 최국성 부과장이 올라왔다.
가쁜 숨을 내쉬며 최 부과장이 한마디 했다.
“집에 있는 딸년들 생각이 간절했습네다.
대원들이 확보도 하고 로프도 사리고 이제 제법 산악인 티가 나는 것 같습네다."
대원들이 거의 다 올라오자 하강을 시작했다.
김경모, 정상택씨가 1·2피치에 대기하며 대원들의 하강을 도와주었다.
온정각에 모인 남북 대원들은 이번 공동연수를 마무리 짓는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장봉완 학감은 지난 1986년 K2 원정 때의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봉사대의 역할과 정신에 대한 당부의 말로 총평을 대신했다.
“봉사대는 미리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또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봉사대의 정신과 자부심을 잊지 말아야 하고, 자신과 동료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양준성 과장의 총평도 이어졌다.
“등반기술 측면에서 여러 가지 교류를 나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네다.
이번 공동연수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금강산 관광객들을 더 편하게 모시겠습네다.
그리고 북남 산악교류를 더 넓혀 나가도록 하겠습네다."
남북 대원들이 서로 왕래하고 히말라야에 가서 합동등반을 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북측에게 정식으로 초청장을 보내 설악산 등 남측의 산을 등반하게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남북 대원들은 술잔을 부딪쳤다.